본문 바로가기
카테고리 없음

인재상 - T자형

by 은빛의계절 2013. 7. 18.
728x90
반응형
BIG

다양한 지식·경험 통한 창조적 문제해결 능력 요구

인문학적 소양 갖춘 ‘통섭형 인재’가 각광받는 이유

혁신과 창조 위해 인문학의 풍부한 상상·감성 필요

어릴 때부터 사고 영역 넓히는 교육 받는 것이 중요


'통섭’이라는 용어를 국내에 처음 소개한 최재천 교수는 ‘단순한 병렬적 수준의 통합이나 융합을 넘어 새로운 이론체계를 찾으려는 노력’으로 정의한다. 하지만 일반적으로는 ‘인문학과 자연과학의 경계를 허물어 창조적으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능력’ 정도의 의미로 융합과 함께 사용된다. 통섭형 인재가 각광받는 이유는 한 가지만 잘하는 사람보다 다양한 지식과 경험을 통해 융통성 있게 문제를 해결하는 사람이 필요한 시대이기 때문이다.

 

 

통섭과 융합의 차이

 

세종대왕은 한글을 발명한 언어학자이면서 역사와 법학, 천문학, 의학에까지 정통했다. 레오나르도 다빈치는 최후의 만찬과 모나리자를 그린 화가이면서 최고의 수학자, 과학자였다. 정약용은 한국의 대표적인 실학자이면서 수많은 발명을 한 과학자, 건축가, 경제학자였다. 위 인물 중 통섭형 인재는 누구이고 융합형 인재는 누구일까?

 

요즘 한국 사회의 최고 화두는 ‘통섭(統攝)’이다. 기업들은 통섭형 인재 양성을 위한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대학들은 앞다퉈 통섭을 표방한 학과를 설립하고, 석학들은 지식의 통섭을 외친다. 통섭이 혁신·창조·발전을 위한 유일한 해답인 것처럼 진지하다.

 

사전적으로 ‘전체를 도맡아 다스림’이라고 풀이되는 이 어려운 단어는 과거 성리학과 불교에서 이미 사용되어온 용어로 ‘큰 줄기를 잡다’라는 뜻을 지닌다. 그러던 것을 최재천 교수(이화여대 에코과학부)가 2005년 미국 하버드대 석좌교수 에드워드 윌슨의 저서 《컨실리언스(Consilience: The Unity of Knowledge, 1998)》를 번역하는 과정에서 ‘통섭:지식의 대통합’으로 재해석하며 일반에 널리 알렸다. 생물학 박사인 윌슨 교수는 인문학·사회과학·예술 등이 모두 인간에 대한 학문이기 때문에 유전학·진화학·뇌과학을 기반으로 재해석하고 통합할 수 있을 것이라는 전망을 내놓았다.

 

컨실리언스(consilience)라는 단어는 19세기의 자연철학자 윌리엄 휴웰(William Whewell)이 1840년에 출간한 책 《귀납적 과학의 철학》에서 처음 사용했다. 휴웰이 ‘점핑 투게더(jumping together)’, 즉 ‘모든 학문에 공통되는 사실’로 사용한 단어를 윌슨이 복구했고, 윌슨의 하버드대학교 제자인 최재천 교수가 학문적 용어로 도입한 것이다. 최 교수는 ‘우물을 깊게 파기 위해 넓게 파는 것이 통섭’이라면서 《지식의 통섭-학문의 경계를 넘다》(최재천·주일우 엮음)를 통해 다음과 같이 통섭과 융합의 개념을 구분했다.

 

융합은 ‘녹여서 하나로 합침’이라는 뜻으로 핵·세포·조직 등이 합쳐지는 과정을 묘사할 때 흔히 쓰인다. 통섭은 ‘서로 다른 요소 또는 이론들이 한데 모여 새로운 단위로 거듭남’으로 정의할 수 있다. 융합이 여러 재료가 혼합되어 있는 비빔밥이라면 통섭은 그 재료들이 발효를 거쳐 전혀 새로운 맛으로 창출되는 김치나 장에 비유하면 좋을 것이다. 그래서 통섭은 단순한 병렬적 수준의 통합이나 융합을 넘어 새로운 이론 체계를 찾으려는 노력이다.

 

그러나 지식의 깊이와 범위를 비빔밥과 김치처럼 구분하기는 쉽지 않은 일이어서 통섭과 융합은 ‘인문학과 자연과학의 경계를 허물어 창조적으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능력’ 정도의 의미로도 사용된다. 굳이 구분하자면 융합형 인재는 다방면에 지식이 많은 팔방미인형이고, 통섭형 인재는 인문학적 소양과 과학적 지식을 함께 갖춘 형이라 할 수 있으나 이 또한 최재천 교수의 기준을 따른 경향이 있어 학문적인 반발도 있다. 결국 통섭형 인재 혹은 융합형 인재는 특정 분야에만 뛰어난 스페셜리스트(specialist)가 아니라 다양한 분야의 지식을 갖춘 제너럴리스트(generalist)를 의미한다. 세종대왕과 레오나르도 다빈치와 정약용은 인문학과 과학을 섭렵한 통섭형 인물인 동시에 팔방미인 융합형 인물인 것이다.

 

 

왜 인문학적 소양을 갖춘 통섭형 인재가 뜨는가

 

그런데 왜 인문학인가? 취업률이 높지 않다는 이유로 국문학과가 폐지되고, ‘대학=취업=돈’이라는 왜곡된 인식 속에 ‘인문학은 죽었다’는 말이 무성한 시절에 인문학적 소양을 갖춘 ‘통섭형 인재’가 각광받게 된 이유는 무엇인가?

대답은 간단하다. 한 가지만 잘하는 사람보다 다양한 지식과 경험을 통해 융통성 있게 문제를 해결할 사람이 필요해졌기 때문이다. 21세기는 정보통신·생명공학·나노 등 최첨단 기술들이 융합하면서 혁신과 창조를 거듭하고, 과학기술과 인문학·문화·예술·디자인 등의 융합도 가속되고 있다. 아이폰을 만든 스티브 잡스나 아바타를 만든 제임스 캐머런 같은 사람이 되려면 컴퓨터뿐만 아니라 그림도 잘 그리고 스토리도 만들 줄 알아야 한다. 그런 능력은 학문의 경계를 자유롭게 넘나들며 인문학과 자연과학을 함께 알아야 생겨난다.

 

한국인은 부지런하고 머리가 좋은데도 스티브 잡스나 제임스 캐머런 같은 창조적 인재가 나오지 않는 이유가 바로 지식의 통섭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그렇게 된 배경 중 가장 큰 원인은 교육제도다. 고등학교 때부터 문과·이과의 구분에 익숙해진 한국인은 인문학과 자연과학을 별개 학문으로 생각한다. 서양에서는 점차 사라지고 있는 학과 구분이 한국에서는 절대적인 기준으로 자리 잡았고, (취업이 잘되거나 돈을 잘 버는) 특정 학과가 인기를 끌면서 전문성이 강조되는 스페셜리스트가 목표가 되었다.

 

외국의 교육제도는 오래전부터 한국과 달랐다. 미국 하버드대에서는 1933년부터 인문학과 자연과학의 교류가 시작되었고, MIT공대는 예술과 공학을 융합한 미디어랩(Media Lab)을 1985년부터 운영해오고 있다. IT와 미디어, 예술, 의료 등 학문 간 경계를 무너뜨리는 창의적 교육으로 전자잉크, 표정 짓는 로봇 등 다양한 신기술을 선보이는 ‘꿈의 발전소’ 미디어랩의 조이 이토 연구소장은 일본계 고졸 학력(대학 중퇴)의 나이트클럽 DJ 출신이다.

 

스탠퍼드대는 ‘D스쿨’이라는 이름으로 공학·인문학과 결합한 디자인을 연구하고, 카네기멜론대는 ‘휴먼컴퓨터인터페이스(HCI)’ 과정을 통해 일상활동과 컴퓨터의 자연스러운 통합을 추구하고 있다. 일본도 학문 전 분야를 아우르는 ‘슈퍼대학원’의 등장을 앞두고 있다.

 

기업도 지식의 통섭을 추구해왔다. IT기업 구글은 2011년 신입사원 6000명 중 5000명을 인문학 전공자로 뽑았고, 애니메이션 제작사 픽사는 사내 대학에 인문학 강좌를 100여 개나 개설하고 있다. 스티브 잡스는 “인문학과 기술이 만나는 지점에 애플이 존재한다”면서 “소크라테스와 식사할 기회를 준다면 애플의 모든 기술과도 바꿀 수 있다”는 말을 남기기도 했다.  

 

결국은 사람이다. 인문학은 사람에 대한 학문이고, 어떤 첨단 과학기술도 사람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기에 혁신과 창조를 위해서는 인문학의 자유로운 상상, 풍부한 감성의 힘이 필요한 것이다.

 

 

섭형 인재의 허상을 경계하라

 

하지만 통섭형 인재는 하루아침에 만들어지지 않는다. 역량을 쌓으려는 개인의 노력도 중요하지만 어릴 때부터 사고의 영역을 넓히는 교육을 받는 것이 더욱 중요하다. 교육부의 융합인재교육(STEAM; Science, Technology, Engineering, Arts & Mathematics)은 성과가 기대되는 방안이다. STEAM에 맞춰 개정된 초등 1·2학년 교과서는 기존 바른생활, 슬기로운 생활, 즐거운 생활을 통합하여 주제별로 봄·여름·나·가족 등으로 재구성되었다. 기존 내용들을 한 주제 안에서 함께 다루면서 주입식·암기식이 아닌 체험 및 탐구실험 중심으로 기초부터 바꿔나가는 것이다. 지식과 정보를 많이 배우는 것에 그치지 않고 그것들을 조합하여 활용하고 새로운 것을 만드는 능력을 키우는 것이 통섭·융합 교육의 목표다. 그리고 그 교육의 완성은 예술과 기술의 융합, 구체적으로는 상상력과 예술적 감수성을 첨단기술과 융합할 수 있는 통섭형 인재의 배출이다.

 

하지만 통섭형 인재의 허상은 경계해야 한다. 하나의 전문분야를 갖기도 어려운데 다른 분야에도 소양을 갖추어 창의력을 발휘하라는 요구는 또 다른 억압과 틀로 작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통섭과 융합에 집착해 학과도 연구소도 정체성 모호한 조직과 집단으로 변질될 우려가 있다. 한 분야의 능력만 타고나 아무리 노력해도 다른 일은 못 하는 사람도 분명 있다. 모두가 통섭형 인재가 될 수 없고 될 필요도 없다. 이 사회에는 통섭형 인재만 필요한 것이 아님을 분명히 해야 할 것이다.     

728x90
반응형
LIS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