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일상/Chat GPT 1일 3문

남극 빙어는 헤모글로빈 없이 어떻게 살까? | 하루의 세 가지 우연

by 은빛의계절 2026. 10. 30.
728x90
반응형
BIG

2026년 10월 30일 금요일

남극 빙어는 헤모글로빈 없이 어떻게 산소를 운반할까요? 차가운 바다뿐 아니라 순환계의 여러 특징을 함께 보아야 합니다. 오늘은 이 물고기와 새롭게 설계한 단백질 분해효소, 알파벳 e 없이 쓴 소설을 연결해 ‘익숙한 방식 없이도 기능이 성립하는 조건’을 묻습니다.

The Frontier — 자연의 접힘을 벗어난 분자 가위

단백질의 아미노산들을 잇는 펩타이드 결합은 물속에서 저절로 쉽게 끊어지지 않습니다. 반응이 가능하다는 것과 빠르게 진행된다는 것은 다른 문제예요. 가수분해에 이르는 활성화 장벽이 높기 때문입니다. 효소는 반응물의 배치와 주변 상호작용을 조절해 더 낮은 장벽의 경로를 제공합니다.

2026년 10월 14일 《Nature》에 발표된 Choi 등의 「De novo design of cysteine proteases」는 활성화된 시스테인을 이용해 단백질 사슬을 자르는 효소를 새롭게 설계했습니다. 시스테인 곁사슬의 황을 포함한 작용기가 친핵체로 참여해, 펩타이드 결합의 가수분해를 촉진하는 접근이에요. 단순히 단백질에 붙는 데서 나아가 화학결합을 실제로 끊는 기능을 구현한 것입니다. 원논문

연구진은 시험한 69개 설계 중 13개에서 성공을 보고했고, 무촉매 반응 대비 속도 향상은 최대 약 3천만 배였습니다. 이는 가장 빠른 자연 효소보다 3천만 배 빠르다는 뜻이 아니에요. 설계된 효소들의 전체 접힘은 자연의 단백질 분해효소들과 상당히 달랐으며, 확인한 여섯 결정구조는 설계모형과 가깝게 나타났습니다. 원논문

여기서 흥미로운 구별이 생깁니다. 전체 모양에는 다른 답이 있을 수 있지만, 반응이 일어나는 자리의 배치에는 여전히 엄격한 요구가 있습니다. 저자들은 가장 활성이 높은 자연 효소들과 남아 있는 차이를 활성부위의 사전 정렬과 기질 위치의 불완전함으로 해석했어요. 단백질이 설계대로 접혔다는 사실만으로 촉매 성능까지 완성되는 것은 아닙니다. 원논문

연구에 가져올 질문은 이렇습니다. “지금 유지하려는 설계 요소는 기능에 필수적인가, 아니면 익숙해서 그대로 두고 있는가?” 장비를 바꾸기 전에 실험 도식 하나에서 두 종류를 표시해보세요. 반드시 일정해야 하는 조건과, 비교 실험으로 바꿔볼 수 있는 조건을 구분하는 것만으로도 설계의 여지가 드러날 수 있습니다.

The Perspective — ‘e’가 없는 문장은 어디로 가는가

조르주 페렉의 1969년 소설 《La Disparition》은 프랑스어 본문에서 알파벳 e를 사용하지 않는 제약으로 쓰였습니다. 특정 글자를 배제하는 이런 글쓰기를 리포그램이라고 해요. 프랑스 국립도서관은 이 작품을 페렉의 제약 기반 글쓰기를 대표하는 사례로 소개합니다. 최근 연재에서 일상의 관찰자로 만났던 작가가, 이번에는 언어의 사용 조건을 바꾸는 실험자로 돌아옵니다. 프랑스 국립도서관

이미 완성된 문장에서 e만 지우면 읽기 어려운 잔해가 남습니다. 이 소설의 작업은 그런 삭제와 다릅니다. 사용할 수 있는 어휘와 문장 구조를 찾으면서, 처음부터 읽을 수 있는 이야기를 만들어야 해요. 하나의 금지가 단어 선택을 바꾸고, 단어 선택이 문장의 리듬과 서술의 진행에까지 관여합니다.

페렉 협회의 해설은 이 제약이 작품의 생성 방식이면서 내용과도 얽혀 있다고 설명합니다. 실제로 책의 제목부터 ‘사라짐’을 가리키지요. 다만 작품을 그저 언어 퍼즐로만 읽으면 놓치는 부분도 있습니다. 국립도서관은 페렉 작품의 형식적 실험과 함께 상실과 정체성이라는 개인적·역사적 차원을 강조합니다. 페렉 협회 · 국립도서관

여기서부터는 수업으로 옮겨보는 제안이에요. 학생에게 어떤 개념을 설명하되 그 개념의 이름만은 쓰지 못하게 해보면 어떨까요? 예를 들어 ‘평형’이라는 단어 없이, 닫힌 계에서 정반응과 역반응이 계속되는데 조성이 일정하게 유지되는 상태를 설명하게 하는 겁니다. 단어를 금지하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그 단어가 대신 맡고 있던 설명을 꺼내보려는 작은 연습입니다.

물론 제약이 언제나 좋은 글이나 깊은 이해를 낳지는 않습니다. 익숙한 표현을 덜 쓰게 만드는 데 성공해도, 의미가 불분명해질 수 있어요. 금지 규칙을 지켰는지와 전달하려던 일이 이루어졌는지는 따로 살펴야 합니다. 페렉의 소설은 제약 그 자체보다, 그 안에서 무엇을 만들어냈는지 읽게 합니다.

The Obscura — 붉지 않은 피가 흐르려면

남극의 빙어류인 Channichthyidae는 헤모글로빈 없이 살아가는 척추동물입니다. 여기서 말하는 빙어는 우리에게 익숙한 담수 빙어와 다른 무리예요. 피가 붉지 않다는 사실보다 더 어려운 질문은, 산소 운반을 맡는 단백질 없이 어떻게 조직에 산소를 공급하느냐는 것입니다.

*2019년 2월 25일 《Nature Ecology & Evolution》에 발표된 검은지느러미빙어(Chaenocephalus aceratus)의 유전체 연구*는 이 독특한 생리를 유전적 맥락에서 살펴봤습니다. 이 물고기의 혈액은 산소를 물리적으로 용해된 상태로 운반합니다. 혈액 부피당 산소 운반능력은 가까운 붉은 피의 남극 어류에 비해 크게 낮아요. 원논문

찬물에는 같은 산소 분압에서 더 많은 산소가 녹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차고 산소가 풍부한 바다만으로 설명이 끝나지는 않아요. 큰 심장, 많은 혈액량, 발달한 혈관계 등 순환계의 변화가 함께 나타납니다. 2019년 11월 29일 발표된 또 다른 빙어의 유전체·전사체 연구도 헤모글로빈의 부재를 이런 생리적 특징과 함께 다루었습니다. 원논문

‘헤모글로빈이 없어도 산다’는 관찰을 ‘헤모글로빈은 필요 없는 낭비였다’로 읽으면 곤란합니다. 산소 운반능력이 줄어든 만큼 다른 부분이 더 큰 역할을 맡아야 해요. 살아갈 수 있다는 사실과, 같은 비용으로 같은 성능을 낸다는 주장은 서로 다릅니다. 이 사례에서 부재는 단순함을 보장하지 않습니다.

또한 물고기가 먼저 목표를 세우고 산소 운반 방식을 재설계한 것도 아닙니다. 현재의 모습은 진화의 역사와 환경, 여러 형질의 결합 속에서 이해해야 합니다. 어느 하나의 결손만 떼어내 성공담으로 만드는 순간, 그 생명을 가능하게 한 조건들이 지워집니다.

삶에 옮기는 순간부터는 은유가 됩니다. 누군가 익숙한 방법을 쓰지 않고도 일을 해낸다면, 그 사람에게 무엇이 부족한지만 보기보다 다른 어떤 지원과 방식이 작동하는지 살펴볼 수 있어요. 다른 길이 가능하다는 사실은 반갑지만, 그 길의 비용을 보이지 않게 만들 필요는 없습니다.

30초 질문

지금 ‘반드시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 하나를 떠올려보세요. 그것이 사라져도 목적을 유지하려면, 다른 어떤 조건이 바뀌어야 할까요?

연결의 시간 — 조건

설계 효소는 자연에서 익숙한 전체 접힘을 따르지 않아도 반응을 촉진할 수 있습니다. 페렉의 소설은 특정 글자 없이도 이야기를 이어갑니다. 남극 빙어는 헤모글로빈 없이도 산소를 운반합니다. 그러나 어느 사례도 ‘없애기만 하면 된다’고 말하지 않아요.

효소에서는 활성부위와 기질의 관계가 중요하고, 소설에서는 남은 언어 자원을 새롭게 배열해야 합니다. 빙어에서는 환경과 순환계의 여러 특징이 함께 작동합니다. 세 이야기가 공유하는 것은 한 가지 익숙한 구현 방식과, 기능이 성립하는 조건을 구별해야 한다는 시스템 차원의 관계입니다.

중요한 차이도 있습니다. 효소 설계와 문학적 제약에는 사람이 정한 목표가 있지만, 진화에는 미래의 목적을 미리 아는 설계자가 없습니다. 또 소설의 가치는 반응속도나 산소 공급량처럼 단일한 성능지표로 평가할 수 없어요. 이 차이를 남겨두어야 연결이 각 분야를 지워버리지 않습니다.

그래서 오늘의 이야기는 부족함을 찬양하거나 제약을 일부러 늘리자는 권유가 아닙니다. 바꿔도 되는 것과 지켜야 하는 것을 조금 더 정확히 묻자는 제안이에요. 익숙한 형식에 대한 애착을 내려놓을 수는 있어도, 그 형식이 맡고 있던 일을 확인하는 수고까지 생략할 수는 없습니다.

클로징

오늘은 작성 중인 설명에서 자주 쓰는 전문용어 하나를 골라, 그 말 없이 두 문장으로 다시 적어보세요. ‘안정성’, ‘효율’, ‘상호작용’처럼 여러 뜻을 한꺼번에 맡는 단어면 좋습니다.

그리고 원래 문장과 비교해보세요. 정확해진 부분 하나와, 오히려 빠져버린 조건 하나를 찾으면 충분합니다. 용어를 영영 버릴 필요는 없어요. 돌아와 다시 쓸 때, 그 단어가 무엇을 책임지는지 조금 더 잘 알게 되면 됩니다.

다른 방식으로 한 번 설명해보는 일은 지금까지의 방식을 부정하는 일이 아닙니다. 익숙한 길 옆에 작은 통로 하나를 확인하는 정도로, 오늘의 연습을 마쳐도 좋아요.


주요 참고문헌

  • Choi, H. et al. “De novo design of cysteine proteases.” Nature. 2026년 10월 14일 발표. 원논문
  • Perec, G. 《La Disparition》. Denoël, 1969년 초판. 프랑스 국립도서관 작가·작품 해설 · 페렉 협회 작품·판본 자료, 2023년 6월 22일 게시
  • “Antarctic blackfin icefish genome reveals adaptations to extreme environments.” Nature Ecology & Evolution 3, 469–478. 2019년 2월 25일 발표. 원논문
  • Bargelloni, L. et al. “Draft genome assembly and transcriptome data of the icefish Chionodraco myersi reveal the key role of mitochondria for a life without hemoglobin at subzero temperatures.” Communications Biology 2, 443. 2019년 11월 29일 발표. 원논문

함께 읽기

728x90
반응형
LIS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