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자의 개념과 발전
고대 그리스 철학자 데모크리토스(Democritus, Δημόκριτος, BC 460~BC 370, 그리스)는 물질을 계속해서 분해하면 결국 더 이상 나눌 수 없는 궁극의 입자에 도달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는 이 입자를 아톰(Atom, 原子)이라 명명했는데, 이는 "a(부정) + tomos(분할하다)"에서 유래한다. 즉, "더 이상 나눌 수 없는 것"이라는 의미를 가진다.
이 개념은 원자론(Atomic theory, 原子論)의 최초의 명확한 주장으로 평가받지만, 당시에는 이를 실험적으로 확인할 방법이 없었기에 단순한 철학적 사고에 머물렀다.
과학뿐만 아니라 인간의 사상(Thought, 思想)은 사회 변화와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으며, 이를 실증적으로 확인할 수 있는 단계에 도달해야만 널리 받아들여질 수 있다. 원자의 개념이 실체를 갖추기까지는 긴 시간이 필요했다.
18~19세기의 원자 이론 발전
18세기 말, 라부아지에(Antoine Lavoisier, 1743~1794, 프랑스)는 화학 변화에서 양적인 관계(Quantitative relationship, 量的關係)를 강조하며 실험을 통해 연구를 진행했다. 이는 산업혁명(Industrial Revolution, 産業革命)이라는 사회 변화가 이루어낸 과학적 성과였다.
라부아지에의 질량 보존의 법칙(Law of Conservation of Mass, 質量保存の法則)을 바탕으로,
프루스트(Joseph Proust, 1754~1826, 프랑스)는 정비례의 법칙(Law of Definite Proportions, 定比例の法則)을 발견했다.
이후 돌턴(John Dalton, 1766~1844, 영국)은 메탄(CH₄)과 에틸렌(C₂H₄)에서 탄소와 결합하는 수소(Hydrogen, 氫)의 질량비가 2:1이라는 점에 주목했다. 여러 화합물을 연구한 결과,
"A원소와 B원소가 결합하여 두 종류 이상의 화합물을 만들 때, A 원소의 일정량과 결합하는 B 원소의 질량 사이에는 간단한 정수비가 성립한다."
라는 배수 비례의 법칙(Law of Multiple Proportions, 倍數比例の法則)을 정립했다.
이 "정수비(Whole-number ratio, 整數比)"라는 개념은 원자가 1개, 2개로 셀 수 있는 개별적인 입자임을 시사하며, 19세기 초 원자론의 확립을 의미했다.
원자의 실체적 탐구 (19~20세기)
돌턴 이후 수많은 과학자의 연구가 이어지며 원자 개념은 화학(Chemistry, 化學)에서 확고한 기반을 다졌다. 하지만 원자가 실제로 어떤 형태인지 이해하는 데는 다시 1세기가 필요했다.
과학자들은 원자의 개별 구조를 직접 연구할 수 있는 방법을 개발하며, 원자의 세계에 한 발짝 더 다가갔다.
- 1897년, 톰슨(J. J. Thomson, 1856~1940, 영국)은 전자(Electron, 電子)를 발견하여, 원자가 더 작은 입자로 구성되어 있음을 증명했다.
- 1911년, 러더퍼드(Ernest Rutherford, 1871~1937, 뉴질랜드)는 원자의 중심에 원자핵(Nucleus, 原子核)이 존재함을 발견했다.
러더퍼드는 태양계를 모델로 원자 모형을 제안했다.
- 원자핵을 태양에,
- 전자를 행성에 비유하여,
태양계 모형(Solar System Model, 太陽系模型)을 형성한 것이다.
그러나 이 모델을 더욱 발전시켜 오늘날의 원자 구조 모델을 완성한 것은 보어(Niels Bohr, 1885~1962, 덴마크)였다.
보어는 1913년,
- 전자가 특정한 에너지 준위(Energy level, 能量準位)를 따라 움직인다는 개념을 도입하여,
- 원자의 양자적 구조를 설명했다.
이러한 연구가 현대 원자 모델(Modern Atomic Model, 現代原子模型)로 발전하는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다.
주석: 과학자 정보
데모크리토스 (Democritus, Δημόκριτος, BC 460~BC 370, 그리스)
- 업적: 최초로 원자의 개념을 주장, "아톰(Atom, 原子)"이라는 개념 제시
- 기타: 실험적 증거 없이 순수한 철학적 사고로 제안한 개념
라부아지에 (Antoine Lavoisier, 1743~1794, 프랑스)
- 업적: 질량 보존의 법칙(Law of Conservation of Mass) 정립
- 기타: 현대 화학의 아버지로 불리며, 연소 이론 확립
프루스트 (Joseph Proust, 1754~1826, 프랑스)
- 업적: 정비례의 법칙(Law of Definite Proportions) 발견
- 기타: 화합물의 조성비가 일정함을 실험적으로 입증
돌턴 (John Dalton, 1766~1844, 영국)
- 업적: 배수 비례의 법칙(Law of Multiple Proportions) 발견, 원자론 확립
- 기타: 색맹 연구에서도 중요한 기여를 함 (돌턴주의, Daltonism)
톰슨 (J. J. Thomson, 1856~1940, 영국)
- 업적: 전자(Electron) 발견, 음극선 실험(Cathode Ray Experiment) 수행
- 수상: 1906년 노벨 물리학상(Nobel Prize in Physics) 수상 (기체 방전 연구)
- 기타: "푸딩 모델(Plum Pudding Model)"을 제안했으나 후에 수정됨
러더퍼드 (Ernest Rutherford, 1871~1937, 뉴질랜드)
- 업적: 원자핵(Nucleus) 발견, 알파 입자 산란 실험(Alpha Particle Scattering Experiment) 수행
- 수상: 1908년 노벨 화학상(Nobel Prize in Chemistry) 수상 (방사능 연구)
- 기타: 방사능 연구에도 기여, "핵물리학의 아버지"로 불림
보어 (Niels Bohr, 1885~1962, 덴마크)
- 업적: 보어의 원자 모형(Bohr Model of the Atom) 제안
- 수상: 1922년 노벨 물리학상(Nobel Prize in Physics) 수상 (양자역학 연구)
- 기타: 양자역학 발전의 기초가 되었으며, 원자의 에너지 준위 개념 도입
그리스시대의 철학자 데모크리토스는 물질을 분해해가면 이제는 더 이상 분해할 수 없는 궁극의 입자에 도달할 것이라고 생각하여 이 입자를 아톰[a(부정) + tomos(분해하다)]이라고 명명했다. 이 것이 원자라고 하는 사상을 뚜렷이 내세운 최초이었다고 한다. 이것은 오늘날의 사고로서 훌륭한 착상이었으나 당시는 실제로 그 것을 확인할 수단도 없었고 그저 머리 속에서 궁리된 것에 지나지 않았다.
과학 뿐만 아니라 인간의 사상()은 사회의 변화와 결부되고 사람들 손에 잡아서 그 사상을 확인할 수 있게 됨으로써 비로소 사람들의 마음 속에 확고한 뿌리를 내리는 것이다. 원자의 사상이 구체적인 모습을 나타내기까지에는 긴 역사가 필요했다.
라브와지에가 18세기 말 경에 화학 변화에 있어서의 양적인 관계를 중시하여 실험에 도입한 것도, 산업혁명 이래의 사회 변화의 토대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라브와지에의 질량 불변의 법칙의 토대 위에 프루스트는 화합물을 형성하고 있는 원소의 질량 사이에는 간단한 비례관계가 있다'는 정비례의 법칙()을 발견했다. 다시 그 기초 위에 돌턴은 메탄과 에틸렌에서 일정량의 탄소와 결합하는 수소의 질량비가 2:1이 되는 것에 착안하여 여러 가지 화합물을 조사한 결과 [A원소와 B원소가 화합하여 두 종류 이상의 화합물을 만들 때, A 원소의 일정량과 화합하는 원소 B의 질량 사이에는 서로 간단한 정수비가 성립된다]라고 하는 유명한 배수비례의 법칙()에 도달했다. 이 "정수비"야말로 원자가 1개, 2개로 셀 수 있는 입자 라는 것을 가리킨 것이다. 19 세기 초의 일이었다.
돌턴을 하나의 새로운 출발점으로 하여 그 후의 많은 사람들의 작업으로 지탱되면서 원자의 사상은 차츰 화학 세계에서 정착되어 갔다. 그러나 그것이 실제로 어떤 입자인지, 말하자면 원자의 물리적인 모습이 밝혀지기까지에는 다시 1 세기를 요했다. 그 동안에 인간은 한 개 한 개의 원자라고 하는 미크론()의 세계로 발을 들여놓을 수단을 얻게 되었다. 그리하여 1897년에 톰슨이 전자를 발견하고 이 것에 이어 러더퍼드가 마참내 원자의 심인 원자핵을 포착했다. 이 단계에서 러더퍼드는 원자핵을 태양으로 간주하고 전자를 행성으로 보아 태양계() 와 같은 원자상()을 그리고 있었는데 이 것을 거의 오늘날의 원자상으로까지 완성시킨 것은 보어의 업적이다.